후방주차와 노래 듣기 문화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다가 화단 앞에 후방주차 된 차를 발견했다. 평소엔 “고생하십니다. 바보 같은 인간이 한 짓이라고 치부해버리곤, 훌훌 털어버리세요. 오늘도 수고하세요.”라고 꽃들에게 격력의 말을 던지곤 가던 길을 갔다.

그날따라 유난히(평소에도 유난하지만) ‘차를 저렇게 대버리면 어쩌라는 거야.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지, 꽃들의 안위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거 아니야.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도 타인의 엉덩이를 계속 쳐다보며, 방귀를 들이마신다면 미쳐버릴 텐데. 저렇게 주차한 인간은 분명 만성변비 때문에 고생하는 험악한 놈일 거야. 왜 저런 건 벌금을 매기지 않는 거야. 이러니까 일자리가 없는 거 아니야’로 시작해, 세상 모든 문제가 후방주차로 귀결이라도 되는 듯 투덜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드크라운의 ‘깽값’을 듣고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이건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커피소년이나 10cm에 비해 매드크라운은 사람에게 왠지 모르게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차저차 우리나라 군가를 매드크라운으로 한다면… 이건 개똥 같은 소리 맞습니다.

재생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꽂으면 음파가 귀를 통해 뇌로 달려간다.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뇌의 중심부에 도착한 음파들은 땀 닦을 새도 없이 주섬주섬 악기를 꺼내, 음음, 목을 가다듬곤 노래를 부른다. 깐깐한 대기업 면접관 같은 얼굴을 한 뇌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론 볼펜을 휙휙 돌리며 노래를 평가한다. ‘뭐야 엄청 형편없잖아. 이런 걸 노래라고 부르다니. 어이 거기 기분을 좀 다운시켜.’, ‘음 꽤나 괜찮은걸? 뭐하고 있어 기분을 올리지 않고.’, ‘뭐야 이거 매드크라운이잖아? 이봐 얼른 전투력을 상승시켜.’… 음악과 감정의 상관관계는 대략 이런 것이 아닐까? 과학에 대해선 일자무식인 놈인지라, 이런 공상밖에 하질 못하겠다.

나는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나게 되면, 질릴 때까지 그 곡만 듣는 스타일이다. 집에서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고 있으면, 자주 불평소리를 듣는다. 나 때문에 좋아하던 음악까지 싫어질 거 같다나, 뭐라나…

한 곡을 집중적으로 들어서 그런 건지, 과거 좋아했었던 곡을 다시 들을 때 특정한 행동이 떠오르기도 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란 책을 읽을 때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 때 그 노래’를 대차게 들어댔다. 며칠 전 음악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그 때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됐는데, 음악이 재생되는 내내 머릿속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둥둥 떠올랐다. 이 밖에도 윤딴딴의 ‘겨울을 걷는다’를 들으면 독서가 당긴다거나, 커피소년의 ‘엔틱한 게 좋아’를 들으면 모 스포츠 게임에 접속하고 싶다 거나, 여하튼 그렇다.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은 아이유가 새로 발표한 앨범 ‘꽃갈피’에 수록된, 산울림을 리메이크한 ‘너의 의미’를 듣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후방주차는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꽃의 입장에서도, 차주의 입장에서도, 매드크라운을 듣는 사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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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무구' 연재
 
http://www.mugu.kr/?p=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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